31 December 2019. pp. 75∼104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the process of the Buddhicization of the mountain god and seven-star cults, focusing especially on how these indigenous folk traditions were transformed in their encounter with Buddhism and eventually merged into it. In the late Joseon, as the mountain god and the seven-star went through the syncretization with Buddhism, the shrines for these folk deities were constructed by monks and lay followers within the temple precinct. It was from the 19th century that these shrines became widespread. The acceptance of these two folk traditions into Buddhism during this period can also be confirmed in Buddhist invocation manuals and paintings. Although the seven-star cult had its own trend of Buddhism and Taoism, which led to competition and conflict at times, such interactions rather created Buddho-Taoist amalgams of this cult. This phenomenon was in fact an inevitable outcome, considering the socio-cultural situation of the late Joseon in which Confucianism became ever more dominant. However, such amalgams reflect the process toward an eventual merge through coexistence and mutual transformation. Folk religions were marginalized and otherized and, therefore, should rely on Buddhism to expand its own religious space while Buddhism had to find more valid means to attract new followers and, thereby, broaden its social base. The mountain god and seven-star cults that had continued from ancient times encountered Buddhism and Taoism and underwent transformation and syncretization. The final destination for such a process in Korea was found within the temple space that shows the co-existence of the two traditions through the Buddhicization of these cults.
본고에서는 민간에 전해지던 산신(山神)신앙과 도교의 칠성(七星)신앙이 불교와 만 나면서 어떻게 변화되고 결합되었는지, 그 ‘불교화(佛敎化)’의 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펴 보았다. 고대로부터 한반도에서는 산악(山嶽)과 성수(星宿)가 주요한 신앙대상으로 받 들어졌다. 그런데 조선후기에는 산신과 칠성이 불교와의 습합과정을 거치면서 승속(僧 俗)의 공조 속에 사찰 공간 안에 산신각(山神閣)과 칠성각(七星閣)이 들어서게 된다. 산신 각과 칠성각의 건립은 18세기에도 몇몇 사례가 확인되지만 본격화된 것은 19세기부터 였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의례집의 청문(請文)과 의식문, 그에 따른 관념상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건축뿐 아니라 불화의 도상에서도 그러한 추세가 보인다. 조선후기의 산신신앙은 온갖 재앙을 없애고 복을 빌며 부모의 내세 명복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효과를 바로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칠성신앙은 불교와 도교 각 각의 흐름이 전해져오다가 조선후기에는 도불이 융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러 한 현상은 유교사회로 접어든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할 때 필연적인 결과였으며,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우세라기보다는 공조와 융합의 노정으로 볼 수 있다. 주류질서에서 밀 려 타자화 된 민간신앙은 종교적 행위 공간을 확보하고 있던 불교에 기댈 수밖에 없었 고, 불교 측에서도 새로운 신앙수요를 창출하고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을 찾 은 것이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산악과 성수 신앙은 불교와 도교를 만나 변용과 습합 의 길을 걸었고, 그 종착지는 불교화를 통한 공존 및 사찰 공간 내로의 안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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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Publisher :Korean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 Publisher(Ko) :불교학연구회
  • Journal Title :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 Journal Title(Ko) :불교학연구
  • Volume : 61
  • No :0
  • Pages :75∼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