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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Vol.61
December 2019. pp. 1∼39
Abstract
This paper is a research work on the situation of national Buddhist servic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rom the perspective of a shifting religious mentality. Specifically, this research examined whether the reduction and abolition of national Buddhist ceremonies in the period occurred in the same or similar context with the changes in the offering services for ancestors or gods. Unlike the periods of King Taejo, the founder of the dynasty, and King Jeongjong, King Taejong’s period served as a turning point for the reduction and abolition of Buddhist services sponsored by the government. Not long after King Taejong ascended the throne, he took a measure to abolish official Buddhist ceremonies, which resulted in termination of almost all of them, if not all. His measure was based on the newly emerged religious mind of the time, not solely on his own will. Since then, this policy has steadily expanded. However, Buddhist services did not thoroughly disappear in the period of King Taejong. Although shrunk in comparison with the former period, various Buddhist services were still held relatively steadily until the end of his reign. Carried out irregularly and regarded as unlawful, Buddhist rituals were held in terms of provisional response to overcome the difficulties at that time. Especially when there were severe natural disasters, kings had to conduct any means possible, including Buddhist services, to comfort the people (靡神不擧), though the services were denied and reluctantly taken. The rain ritual shows the changing situation. Since King Sejong, it continued to be held within the boundary of the new policy implemented by King Taejong. However, it gradually decreased in number, and when the King Seongjong era began, the ritual was denied its role as a provisional measure to comfort people and disappeared from the public scene.
본고는 儒佛 교체라는 전통적인 시각에서가 아니라 종교 심성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조선초기 佛事 문제를 다룬 연구 작업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초기의 佛事 감축・폐지는 神事 방면의 혁신적 변화―명나라 초기에 등장한 혁신적 종교 심성의 수용・體化와이를 토대로 한 전면적 祀典 재정비, 그리고 새로운 음사 인식을 토대로 한 舊來 공적 제의의 음사로의 규정 및 이러한 음사의 배격 등의 변화―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을 것을 살펴보았다. 태조와 정종대와 달리 태종대는 불사 감축・폐지의 분기점으로 작용하였다. 태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罷佛事’ 조치가 단행되었는데, 이 조치로 인해 모든 國行佛事는 아니어도 國行佛事 전반이 停罷되고 말았다. 태종의 즉위 직후에 단행된 각종 國行佛事의 停罷는 佛事에 대한 달라진 감각을 토대로 행해진 조치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이 조치는 국왕 개인의 한때 의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혁신적 종교 심성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 이후로도 비교적 꾸준히 불사 停罷의 폭은 확장되어 갔다. 그렇다고 태종대에 불사가 소멸하고 말았다거나 사실상 그러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위축되었어도, 재위 말년까지 각종 불사는 비교적 꾸준히 거행되었다. 다만 그러한 불사는 비상시적인 것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비정례적인 불사는 非禮로 간주되면서도 權道 차원에서 거행되었다. 특히 극심한 재해로인해 民人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위정자는 爲民의 차원에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고(‘靡神不擧’) 그중에는 불사도 포함되곤 하였다. 불사가 비록 부정되고 꺼리어졌어도 말이다. 기우 불사로 볼 때, 세종대 이후 불사는 태종대에 이루어진 획기적 변화의 자장 내에서 거행되었다. 거행 빈도는 점차 감소되어 갔고, 성종대 들어서는 靡神不擧 차원의 기우불사마저 부정되면서 기우 목적의 불사는 사실상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References
    원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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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Publisher :Korean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 Publisher(Ko) :불교학연구회
  • Journal Title :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 Journal Title(Ko) :불교학연구
  • Volume : 61
  • No :0
  • Pages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