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019. pp. 205∼239
Abstract
This paper surveys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Buddhist relic cult in Silla Period (BCE 57 ~ CE 935) and Chinese Buddhist culture from a chronological viewpoint. The aim of this study is to define the originality in the Buddhist relic cult and reliquary style of Silla Period by comparing them with their comtemporary Chinese Buddhist art and culture. The Buddhist relic cult in Silla came from China during the reign of King Jinheung (reign: 540 ~ 576 CE), and the ideal model of his relic cult was Emperor Wu of Liang Dynasty and Ashokan tradition related with the Buddhist kingship. Queen Seondeok (reign: 632 ~ 647 CE) succeeded the Buddhist relic cult and built the famous wooden pagoda in Hwangryongsa Temple. The royal family of Silla had deep inter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Buddhist art and culture until the late seventh century. Two Buddhist reliquary sets from Gameunsa twin pagodas are the most impressive artworks from Silla, but, in fact, the shape and style of them are deeply related with the contemporary Chinese Buddhist rituals for the Buddhist relic worship in Famensi Temple during the reign of Empress Wu. However, after the new Dharma relic cult and Buddhist texts were introduced to Silla in the early eighth century, the Buddhist relic cult and reliquary style in Silla had changed into its own style under the rule of the Pure Light Dharani Sutra. During the ninth century, there became rare inter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Tang Buddhist relic cult. The Buddhist relic cult in Silla at that time was based on the Dharma relic worship, while the Buddhist relic cult in Tang China was based on the worship of the Buddha's bone relic in Famensi Temple under the luxurious sponsorship from imperial family. Such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ninth century may have come from the cultural difference of their Buddhist thought and worship for the Buddhist relic.
신라의 사리장엄구들은 독창적인 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들과 동시대 중국 불교문화와의 상관성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이 논문에서는 현존하는 신라의 주요 사리 장엄구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양식적, 불교문화적 특징과 동시대 중국 불교문화와의 상 관성에 대해서 비교 고찰하였다. 신라는 불교 공인 이후 왕실을 중심으로 정치적 목적 을 가진 중국 남조 양 무제의 사리신앙과 장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발전시켰다. 신 라에 사리가 처음 전래된 진흥왕 연간부터 통일 이전인 7세기 중반경까지의 사리장엄 구들은 대부분 왕실에서 발원하였으며, 정치적 목적이 강조된 아육왕 전승 구현과 연결 된 사리신앙을 발전시켰다. 당시 신라 왕실은 동시대 중국 황실의 사리신앙 및 불교문 화 동향의 변화에 꾸준히 주목하고, 중국 불교문화와 깊은 상관성을 가지며 사리장엄구 를 제작했다. 통일 직후에 제작된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들은 독특한 방추형함과 보장형사리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신라만의 독특한 불교미술 양식 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의 법문사 사리공양의례의 영향이 신라적 양식으로 변용된 것이다. 8세기 전반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중국으로부터 전래되면 서 신라의 사리장엄구는 법사리장엄 의례가 중심이 되었고, 사리장엄구의 형식은 단순 하고 간소화되었다. 이는 8-9세기경 중국 당나라 황실에서 법문사 탑의 불지골사리를 중심으로 성대한 의례와 화려한 사리장엄구들을 제작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신라 의 사리장엄구와 중국 불교문화의 상관성은 사리신앙 전래 초기에는 상당히 깊게 연결 되어 있었지만,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점차 서로간의 상관성이 멀어졌으며, 9세기 이후에는 불교문화와 사상적 차이로 인하여 신라와 당의 사리장엄구는 완전히 다른 양 상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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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Publisher :Korean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 Publisher(Ko) :불교학연구회
  • Journal Title :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 Journal Title(Ko) :불교학연구
  • Volume : 61
  • No :0
  • Pages :205∼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