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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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paper, I illuminate some characteristics of Woncheuk's view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econd and Third Buddhacakras presented in Sa.dhinirmocana-s.tra. For this, based on some newly identified materials (parts of the section Discourse on Essence of Buddha's Teaching (教體論) of "Seo pum" (序品; Ch. Xu pin, Introductory Chapter); omitted in classical Chinese) in Ḥphags pa dgoṅs pa zab mo ṅes par ḥgrel paḥi mdo rgya cher ḥgrel pa, the Tibetan version of Haesimmilgyeong so (解深密經疏; Ch. Jieshenmijing shu, Commentary on Saṃdhinirmocana-sūtra), written by Woncheuk (圓測 613-696; Ch. Yuance), and related materials in his works, I present some hermeneutical premises of his view on the Three Buddha-cakras, his interpretation of the criteria of discrimination between nītārtha and neyārtha, and his views on the development of Buddhist thought. First, as a commentator on Saṃdhinirmocana-sūtra, Woncheuk, according to the hermerneutical premises of Three Buddha-cakras, presents that (1) the common theme of both the Second and Third Buddha-cakras are Emptiness (空), so there is neither superiority nor inferiority between them, but (2) from the viewpoint of either ending or creating disputes, the Third is actually superior to the Second Budda-cakra. Second, he further interprets that the criteria of discrimination between nītārtha and neyārtha is not the theme of Buddha-cakra itself, but both the differences of the speaker's preaching style according to the hearer's abilities, and the effects of preaching on the part of the hearer. Third,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newly identified materials mentioned above, I illuminate that Woncheuk, from the standpoint of a Yogacāra thinker who thinks that only his school really understands Emptiness, reinterprets Emptiness as nītārtha based on his own hermeneutical horizon that Emptiness itself, in fact, penetrates through Three Characters (三性), therefore integrating both the Second and Third Buddha-cakras as one. Futhermore, extending the line of thought above, I reveal that his sensational opinion that the Second Buddha-cakra, Prajñā-pāramitā literatures are also nītārtha is understandable in that from the viewpoint of Ultimate Truth (勝義諦), Emptiness is conceived to be Three Characters. In conclusion, Woncheuk's view, first of all, is characterized by the emphasis on the continuity and ultimate sameness between the two Buddha-cakras in terms of including the Second from the standpoint of the Third Buddha-cakra. But at the same time, the status of the Third Buddha-cakra is actually higher in his mind than the Second since the former is a perfect teaching that overcomes the negative extremes of the latter. I believe that this derives from his fate as a Yogacāra commentator who regarded Saṃdhinirmocana-sūtra as one of the supreme canonical authorities.
이 논문은 해심밀경(解深密經)의 이른바 ‘삼시교판(三時敎判)’에 등장하는 제2시 반야경(般若經)과 제3시 해심밀경(解深密經) 간의 관계에 대한 원측(圓測, 613-696) 인식의 특징에 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근래에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서품(序品)」 교체론의 티벳어역(대응하는 한문이 생략된 부분) 속에서 새로 발굴한 자료들과 원측 저작 속에 산재하는 관련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원측 교판론(敎判論)의 해석학적 전제, 료의(了義)와 불료의(不了義) 판단의 기준, 그 이면의 불교사에 대한 인식 등을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주제와 관련하여, 해심밀경의 주석가 원측은 「무자성상품」의 삼시 교판의 해석학적 전제에 따라 (1)무상과 료의는 공이라는 설법 주제를 공유하지만, (2)상이한 청중의 수행적 지향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해진 가르침이며, 또 (3)논쟁과 야기와 종식이라는 관점에서 양자 간에는 ‘결과적으로’ 우열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했음을 밝혔다. 둘째 주제와 관련하여, 원측에게 있어 제2시 불료의와 제3시 료의의 차이는 ‘설법 주제[所詮]’ 자체의 차이가 아니며 설법 주체 측면의 중생의 근기에 따른 설법 방식의 차이와 함께 설법 수용 측면의 ‘설법 효과의 차이’(=부정적 유산의 유무)를 의미함을 지적하였다. 셋째 주제와 관련하여, 신발굴자료를 중심으로 양자의 차이와 동일성에 대한 앞선 원측 인식이 기반하고 있는 교리적 또는 불교사관적 근거를 조명하여 원측이 스스로 공(空)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유식(唯識)의 료의의 입장에 서서 제2시 ‘무상(無相)’을 제3시 ‘삼성(三性)’과의 관계 속에서 ‘료의’로 재해석함으로써 양자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려 했음을 지적하였다. 또 위의 연장선상에서 제2시 ‘반야경이 삼성을 설하고 있기 때문에 료의’라는 원측의 일면 파격적인 주장도 ‘궁극적 진리[勝義]의 관점’에서 무상은 삼성을 설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함을 밝혔다. 이상 양자의 관계에 대한 원측 인식은 제3시의 관점에서 제2시를 포괄함으로써 양자 간의 연속성과 궁극적 동일성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우선 두드러진다. 하지만 동시에 원측의 마음속에는 제3시 료의가 제1시 설법이 유발하게 되는 유집의 극단과 제2시 설법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무집의 극단을 모두 변증법적으로 지양(止揚)했다는 점에서 제2시 무상보다 더 높은 가르침이라는 우열 의식이 여전히 존재하는 듯하다. 이것은 어쩌면 논쟁의 종식이라는 관점에서 완전한 가르침으로 인식된 해심밀경을 최고 권위로 인정하는 ‘유가행(瑜伽行) 사상가’ 원측의 운명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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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 :Korean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 Publisher(Ko) :불교학연구회
- Journal Title :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 Journal Title(Ko) :불교학연구
- Volume : 40
- No :0
- Pages :83 ~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