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August 2012. pp. 437 ~ 483
Abstract
The point of dispute on the Suddenness-Gradualness dispute(頓漸論爭) is to be condensed in two questions; One is “Is it reasonable to regard the Chi-nul’s(知訥) sudden enlightenment(頓悟)/the intellectual enlightenment(解悟) as intellectual understanding(知解)?”, and the other is “Is it sufficient to see Chi-nul’s(知訥) sudden enlightenment(頓悟) as Wha-um’s WonDonSinHae(圓頓信解)?” The Suddenness-Gradualness dispute(頓漸論爭) having the proposition that ‘Chi-nul’s(知訥) sudden enlightenment(頓悟) is the intellectual enlightenment(解悟)’in common has some logical inconsistency and descriptive ambiguity. Especially the supporters’view of Chi-nul’s(知訥) sudden enlightenment and gradual practice(頓悟漸修) show the logical inconsistency and descriptive ambiguity in that they argue the difference between the intellectual enlightenment(解悟) and the intellectual understanding(知解), and assert that the intellectual enlightenment(解悟) is Wha-um’s WonDonSinHae(圓頓信解) which has the hindrance of intellect simultaneously. And their descriptions of the difference between intellectual enlightenment(解悟) and intellectual understanding(知解) are vague and meaningless. In order to solve the confusion and to read the Suddenness- Gradualness dispute(頓漸論爭) newly, a different way of reading is to be constructed. To form the new way of reading, the proposition that ‘Chi-nul’s(知訥) sudden enlightenment(頓悟) is the Wha-um’s intellectual enlightenment(解悟)’must first be reconsidered.
지눌의 돈오점수를 비판하고 돈오돈수를 천명한 성철의 돈점론 이후 전개된 돈점 논쟁에서, 그 핵심 논점은 결국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 ‘지눌이 설하는 해오(解悟)로서의 돈오를 지해(知解)로 간주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지눌의 돈오를 화엄사상, 특히 성기사상에 의거한 원돈신해(圓頓信解)로 써 파악하는 것은 충분한가?’가 다른 하나이다. 해오를 지해라고 간주하여 돈오점수를 비판하는 성철은, 그 논거 를 ‘지눌의 돈오는 해오이고 그 해오는 화엄의 원돈신해 관법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서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해오와 지해 의 차이를 주장을 사람들도, ‘지눌의 돈오는 화엄 원돈신해를 그 내 용으로 삼고 있으며, 그의 돈오/해오는 화엄의 성기론적 이해를 담 기 위한 것 혹은 그 결과’라는 관점을 널리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지눌의 돈오/해오를 화엄의 원돈신해와 등치시킨다는 점에서는, 성 철은 물론 대다수 지눌 연구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결국 ‘해오(解 悟)/지해(知解)/해애(解碍)’를 동일시하는 성철의 견해에 대한 판 단과 평가는, ‘화엄적 해오가 지해인가 아닌가?’에 어떻게 답하느냐 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 해오와 지해의 차이를 주장하는 견해들은 ‘화엄적 원돈신해가 단 순한 지해와는 다르다.’고 할 것이고, 성철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차 이를 부여해 보았자 본질적으로 지해 범주를 못 벗어난다.’고 공박 할 것이다. 돈오점수에 대한 성철의 비판으로 전개된 돈점 논쟁에는 그 핵심 논점을 둘러싸고 혼란이 존재한다. ‘지눌의 돈오는 화엄적 해오이 다’라는 명제를 공유하고 있는 기존의 돈점 논쟁에는 아직 해소되 지 못한 논리적 혼란과 기술(記述)의 모호함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 다. 특히 지눌의 돈오점수를 수긍하여 옹호하려는 관점들에서 그러 한 문제점이 부각된다. 해오와 지해의 차이를 설정하면서도 그 차 이의 내용을 의미 없는 수사적 어법으로써 대체하는 모호함이 있 고, 돈오/해오와 지해의 차이를 주장하면서도 돈오/해오의 내용을, 지해의 해애(解碍)를 지닌 화엄의 원돈신해로써 채우고 있는 논리 적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돈점 논쟁을 다루는 틀과 방식을 바꾼 새로운 독법이 요청된다. 돈점 논쟁의 핵심 논점을 둘러싼 모 호함과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독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새로운 독법의 구성은 기존의 논의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명제들을 재검토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지눌의 돈오는 화엄의 원돈신해적 해오’라는 명제를 재검 토해야 한다. 만약 이 전제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면 논의의 틀 자 체를 바꿀 수 있고, 그 결과 지눌의 선사상, 그의 돈오점수와 성철의 돈오돈수, 돈점 논쟁의 의미, 간화선의 의미, 불교 수행론 등, 연관 된 모든 주제들을 재음미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된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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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Publisher :Korean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 Publisher(Ko) :불교학연구회
  • Journal Title :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 Journal Title(Ko) :불교학연구
  • Volume : 32
  • No :0
  • Pages :437 ~ 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