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31 March 2020. pp. 161∼184
Abstract
The year 2019 marks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outbreak of the March 1st (Sam-il) Independence Movement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 rule. Religious group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Movement which was led by the leaders of the Chondoist, Christian and Buddhist communities in the preparation process. Also the religious organizations were greatly used in spreading the movement from the center to the provinces. The March 1st Movement of Buddhist community also developed in this way.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Buddhist March 1st Movement is that the struggle took place even in prison. Manhae Han Yong-un composed Reasons for Korean Independence" (Joseondongnip-eui-seo) as a response to the official investigation into his engagement, at the Seodaemun Prison. The article explains in logical detail why Joseon (now Korea) should be independent. Jo Ji-hoon, a contemporary prominent poet, praised it as a great writing of the time. On November 15, 1919, the 12 high-profile Buddhist monks in Shanghai announced the Declaration of the Korean Monks Association. Existing studies have interpreted the Declaration of the Korean Monks Association as a declaration of struggle against Japan, a sign of gaining independence through bloody warfare rather than seeking peace and practicing mercy. However, in reality, the declaration aimed at world peace beyond the struggle through a bloody war against Japan for independence.
2019년은 3・1운동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사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3・1운동은 준비과정에서 천도교・기독교・불교계 지도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중앙의 만세시위를 지방으로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종교 조직이 크게 활용되었다. 불교계의 3・1운동 만세시위 현상 또한 이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불교계 3・1운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옥중에서도 투쟁이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열람하고,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한용운은 1919년 7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일본 검사의 요구로 옥중에서 집필한 「조선독립의 서」를 집필하였다. 이 논설은 조선이 왜 독립되어야하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였으며, 조지훈에 의해서 당대 명문으로 평가되었다. 1919년 불교계 3・1운동은 그 해 11월 15일 상해에서 불교계의 고승 12명이 「대한승려연합회선언서」를 발표하였다. 기존의 연구에서 「대한승려연합회선언서」는 불교계가 일제에 투쟁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 선언서는 평화를 지향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모습보다는 혈전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왔다. 이 선언서는 독립쟁취를 위해 일제에 혈전을 선언한 투쟁을 넘어 세계평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물론 국외에서 3・1운동의 여파는 해가 바뀌어도 해마다 3월 1일이 돌아오면 해외에서 3・1운동기념식 거행되었고 만세 시위도 이어졌다. 그런 까닭에 3・1운동은 민족해방을 쟁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3・1운동에서 불교계 만세시위만을 검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범위를 사찰과 포교당 등에서 승려들과 불교인들이 모여서 논의되고 결행되었던 것으로 한정하기로 한다. 아울러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요구하였던 불교계 3・1운동을 어떻게 현창하고 계승해야하는지를 함께 검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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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Publisher :Korean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 Publisher(Ko) :불교학연구회
  • Journal Title :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 Journal Title(Ko) :불교학연구
  • Volume : 62
  • No :0
  • Pages :161∼184